남자탁구에 ‘괴물’ 유망주가 등장했다. 초등학교 4학년, 140cm가 갓 넘는 작은 키로 몇 뼘이나 큰 형들을 차례로 꺾었다. 빠르고 깊숙한 백핸드 드라이브가 코트를 꿰뚫을 때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. 첫 경기에서 중학생 형도 이기고, 64강전에서 실업에서 뛰는 대선배도 이겼다.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초등학교 4학년 이승수가 종합선수권 32강에 진출해 놀라움을 안겼다. |
경기 성수초등학교 4학년 이승수가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픽셀스코프 제75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남자 개인단식 32강에 진출했다. 종합선수권대회는 초‧중‧고‧대‧일반부 구분 없이 총망라하여 싸우는 경기방식이다. 학제 위주 시스템에서 후배들이 제한 없이 선배들과 싸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선수권대회다. 1년에 딱 한 번 있는 기회에서 초등부의 ‘꼬마선수’ 이승수가 그렇게 당돌한 존재감을 드러냈다. 초등부 4학년 선수가 최고 권위의 종합선수권대회 32강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.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이승수가 당돌한 경기력으로 선배들을 연파했다. |
이승수는 32강전에서는 국내 최강자 중 한 명인 이상수(삼성생명)와 싸웠다. ‘설마’ 했던 이 경기에서도 이승수는 잘 싸웠다. 첫 게임에서 듀스접전을 펼쳤다. 이상수의 빠른 드라이브를 맞받아치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. 놀란 이상수가 전열을 정비하고 남은 두 게임을 잡아 결국 3대0(12-10, 11-4, 11-9)으로 승리했지만, 이승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맹렬하게 싸웠다. 3게임 9-9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상수의 긴장감이 더 커보일 정도였다.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32강전 상대 이상수도 긴장감 속에 경기를 치러야 했다고. |
경기 직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승수의 대답도 당돌했다. “재미있었다. 형 공격을 맞받아치고, 머리도 쓰고 했는데 잘 통했다. 다음에 또 하고 싶다.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.” 옆에서 듣고 있던 이상수도 거들었다. “어린 선수라서 방심하다가 큰 코 다칠 뻔했다. 그대로 하다가는 질 것 같아서 제대로 싸워야 했다. 이제 5학년이 되는 선수가 이 정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”고 말했다.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이승수는 올해 5학년이 된다. ‘될 성 부른 떡잎’이다. |
이승수는 2011년 8월 14일생이다. 만으로 갓 열 살을 넘긴 나이다. 이승수는 일곱 살 때부터 아빠 탁구장에서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. 아빠 이수기 씨는 곡선중, (동남고)제주제일고, 한체대를 거친 엘리트 선수 출신으로 현재 경기도 성남에서 탁구장(성남탁구교실)을 운영하고 있다. 그런데 시작 동기가 아빠의 권유가 아니다. 어른들 하는 게 재미있어 보여 직접 하겠다고 했단다. 선수가 되기로 했지만 성남에는 엘리트 남자초등학교 탁구부가 없다. 이승수는 성수초 소속으로 등록했지만, 운동은 아빠의 탁구장에서 아빠와 훈련하는 독특한 경우다. 종종 클럽 회원들 중 상급자들이 같이 쳐주기도 하는데, 어른들의 ‘변화무쌍한’ 탁구가 오히려 창의적인 경기력을 키워주고 있다.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32강전 직후, 이승수의 결연한 표정도 인상적이다. |
이승수는 사실 ‘될 성부른 떡잎’이다. 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교보컵 초등학교대회 1-2학년부 단식에서 우승했다. 올해는 초등연맹 회장기 에이브로스배 대회에서 고학년 형들을 모두 꺾고 우승했다. 유소년연맹이 주최하는 주니어오픈에도 출전해 U11-13세부 1차전 우승, 왕중왕전에서 준우승했다. 올해 5학년이 되는 열 살짜리 선수의 성장이 거침없다. 종합선수권에서의 선전은 또래들 사이에서의 경쟁력을 넘어 더 큰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한 무대가 됐다.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국가대표 이상수가 까마득한 후배를 격려했다. 더 잘할 수 있을 것! |
직접 싸워본 ‘국가대표팀 주장’ 이상수는 “내가 저 나이 때 어떻게 했었는지 생각도 안 난다. 어린 나이답지 않게 거침없이 치고 들어오는 자신감이 일단 최고다. 백핸드는 특히 웬만한 성인선수 못지않다. 앞으로 키가 클 테니 포어핸드 쪽 공격력도 좀 더 보완한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이 보인다”고 진단했다. 옆에서 듣고 있던 이승수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. 대답도 거침없다. “세계1등이요!”
▲ (제천=안성호 기자) 대한탁구협회가 선물한 메달을 걸고 포즈를 취한 이승수. 세계1등이 목표예요! |
대한탁구협회는 32강전 직후 이승수에게 로박엠이 기증한 건강 메달을 걸어주었다. 최근 끝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선발된 대표선수들에게 따로 시상했던 기념 메달이다. 국가대표를 목표로 더 열심히 운동하라는 의미였다. 직접 메달을 걸어준 현 국가대표 이상수가 흐뭇한 표정으로 이승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. 남자탁구에 당돌한 기대주가 출현했다.